새해가 얼마 지나지 않은 아침의 일이다. 창가에 머리맡을 두고 자던 나는 이웃집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잠에서 깼다. 바깥이 소란스러워 나가보니, 하얀 세상이었다. 지난 밤새 눈이 발목만큼 쌓여서, 집 앞마당에 아이들이 나와 눈사람을 만들고 있었다. 일본 동경에는 거의 눈이 오지 않는다고 한다. 갑작스러운 폭설에 놀라 당일에는 도쿄의 모든 지하철이 신음을 하고 있었다. (일본의 지하철은 폭우나 폭우, 강풍의 경우엔 운행을 중지한다. 매우, 자주, 빈번하게 멈춘다.)

실토하자면 그날 아침의 아이들의 웃음과 나의 기분은 반비례했다. 타국에서의 생활을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은 데다가, 낯선언어로 적혀 있는 서류와 청구서, 우편물 작업 등 곤란한 일이 많았다. 흔히 우리가 ‘제설’이라 부르는 작업을, 일본에서는 雪かき(유키카키)라고 하는데 スコップ(스콥)이나 スノーダンプ(스노-담푸) 같은 주걱이 넓찍한 장비로 눈을 치워낸다. 기온이 낮고 습해서, 눈을 쓸어내면 그 자리가 금방 얼어 흙으로 덮는 작업을 반복하다보니 아침부터 눈덩이를 맞은 사람들처럼 어른들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어른과 아이
나는 깨달았다, 대자연의 섭리를 그 자체로 순수하게 받아들일 수 없는 나이가 되어버렸다는 것을. 눈이 오면, 아이들과 개들은 펄쩍펄쩍 뛰어다닌다. (개의 발바닥 표면은 인간보다 예민해서 더 차가움을 느끼기에 빨리 움직이려 한다는 기사를 읽었다) 어른들은 재빨리 상황을 정리하려 한다. 교통의 원활한 통제와 안전 확보를 위해 삽으로 얼어붙지 않은 것들을 재빨리 치워버린다. 그러나 어른의 순수성이라는 것은, 아무런 의미와 목적 없이 상대방의 신체 한 부위에 무른 고체를 던지는 것만으로 성취감과 활력을 얻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자신의 기억 한 켠을 추억하는 데에 있지 않을까.

그러던 와중에 지구 남반구로부터 내가 사랑하는 사람한테서 편지가 도착했다. 빛나는 도시에서 아름다운 미소를 갖고 있는 그녀는 내가 아는 어떤 사람보다 강인하고 사랑스럽다. 그녀는 나보다 먼저 일본을 거쳐간 훨씬 선배님이다. 우리는 첫눈에 친구가 될 줄 알았다. 아침까지 차가웠던 감정들이 편지 하나로 녹은 듯이 포근해졌다.
일본 시인이자 번역가인 사이토 마리코(齋藤 眞理子)의 시 일부를 남겨본다.
수업이 심심하겐 ㅡ껴지는 겨울날 오후에는 옆자리 애랑 같이 내기하며 놀았다. (중략) 잠시 후 어느 쪽인가 말한다. ‘떨어졌어.’ ‘내가 이겼네.’ 또 하나가 말한다. 거짓말해도 절대 들킬 수 없는데 서로 속일 생각 하나 없이 선생님께 야단맞을 때까지 열중했었다. 놓치지 않도록. 딴 눈송이들과 헷갈리지 않도록 온 신경을 다 집중시키고 따라가야 한다.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
나는 한때 그런 식으로 사람을 만났다. 아직도 눈보라 속 여전히 그 눈송이는 지상에 안 닿아 있다.
<눈보라>, 사이토 마리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