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일본의 입학식 풍경 entrance ceremony in Japan 2

나는 학교를 좋아한다. 마음 놓고 배울 수 있는 곳, 여러 번 틀려도 괜찮은 곳, 많이 질문할 수 있는 곳의 분위기를 좋아한다. 배움에 모자람이 없다는 말을 체감한다. 배울 수록 모자란다. 스스로가 작아진다는 게 아니라 마음의 공간에 여유가 생긴다. 그 빈 공간을 채워넣고 싶다.

또 한 번의 입학식, 혹은 여러 번

예술학부 입학식

전체 학부 입학식이 며칠 지나지 않아 에코다(江古田) 캠퍼스 대강당에서 예술학부 신입생들을 중심으로 한 입학식이 이뤄졌다. 지난 번과는 다르게 정장 차림에서 벗어나 각자의 개성이 살아나는 머리를 염색하거나 가벼운 복장으로 식장을 찾은 학생들이 많았다. 학교 측에서도 그것을 수용하는 듯 이전보다 캐주얼하고 활기찬 진행으로 학교의 역사와 자랑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日芸는 예술과 전혀 관련이 없는 일반인들도 이름을 알아주는 예술대학 중 하나이다. 특히 현장에서 활동하는 많은 아티스트와 방송인, 유명인들을 배출한 모교로서 알려져 있다.

  • 개그콤비 폭소문제(爆笑問題)의 오오타 히카리(太田光)
  • 모모이로 클로버Z(ももいろクローバーZ)의 아리야스 모모카(有安杏果)
  • 영화배우 이케마츠 소스케(池松壮亮)
  • 각본가 쿠도 칸구로(宮藤官九郎)
  • 애니메이션 감독 카타부치 스나오(片渕須直)

등이 있다.

축하해, 다시 공부하게 된 것을

축하 무용 공연
자축 폭죽

예술대학의 명성에 걸맞게 컨템포러리 무용 축하공연이 이어지고, 소프라노의 솔로 무대로 분위기는 달아올랐다. 입장할 때 건네받은 벚꽃(사쿠라)가 그려진 폭죽으로 스스로의 입학을 자축하는 시간도 가졌다. 앞으로 이 학교에서 과연 무슨 일이 펼쳐질까, 공포영화의 서두와도 같은 캐치 프레이즈를 생각했다. 폭죽이 펑 하고 터질 때, 나는 어린아이처럼 두근거렸다. 동시에 예고를 졸업하고 예술대학 문턱을 전전하면서 현장과 멀어지기를 반복했던 지난 십 년의 일들이 떠올랐다. 학교를 떠났을 때, 나는 무엇이든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학교로 돌아와보니, 나는 아무 것도 몰랐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 사회 역시 학력과 상하관계, 연봉 등으로 개인의 가치가 수치화된다. 학교와 직장에서의 경쟁은 심화되고, 한 개인의 삶과 가치관보다는 집, 차, 부동산 등의 물질이 가치기준의 대체재로 자리잡았다. 아이들은 다양한 색깔의 선택을 주저하고, 사회는 얼마 없는 선택지를 손에 쥐어준다. 물질만능주의와 자본주의가 중심인 오늘날, 예술을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예술과 예술가의 가치를 어떻게 매길 수 있는가? 예술은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인가? 코로나로 인해 전세계가 혼돈에 빠진 이 상황에서, 학교란 우리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예술은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풀어야 할 과제가 아닐 수 없다.

학교에서의 날을 회상하며 텁텁한 마음으로, 최금진의 시 몇 줄을 여기에 적어본다.

도서관 의자들이 모두 일어나 반란군처럼 밖으로 뛰쳐나가고

취업을 위해 앉아 있던 의자를 잃어버린 사람들은

도서관 의자들과 한바탕 시가전을 벌이고 있다

실업의 인간들이여 투항하라

실업은 도서관장님이 해결할 몫이 아니다

세상은 봄이어서 여기저기 개나리가 피고, 진달래가 피고

수능필살기, 만점9급공무원, 부동산중개 등등의 책들이

공중에 날아올라서는

화르르 책 속의 글씨들을 네이팜탄처럼 터트리고

집에 가라, 집에 가서 차라리

아직 웃음의 흔적 기관을 자극할 만화책이나 봐라

벚꽃잎이 낙하산을 타고 도서관 마당을 점령하는데

오늘날 인류가 실용서적을 내기 위해 나무를 밴 것 말고 뭐가 있나

기원전 천칠백 년에 사라진 모헨조다로, 하라파 같은 도시들이

도서관 벽 속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중략)

실업, 실업의 시대

연애편지 따위의 글을 가지고는 어떤 기적도 일어나지 않는다

도서관 관장님은 말씀하신다

당신들은 모두 포위되었다, 투항하라, 오늘은 벚꽃이 피는 날이다

벚꽃이 보시기에 부끄럽지도 않은가

당장 아지랑이 속에서 증발하는 햇빛 한 장씩 읽고 오라

도서관 의자들이 모두 달아나 허공에 둥둥 떠 있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꽃들이 사람들을 물끄러미 보고 있다

<도서관은 없다>, 최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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