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석사를 마친 지 어느새 반 년이 넘었다. 아직도 입학식 당일의 풍경이 머릿속에 강렬하게 남아있는데, 그날의 기억을 더듬어 가보고자 한다. 나는 일본 도쿄에 위치한 사립대학인 니혼대학(日本大学)의 예술 대학원을 졸업했다. 소위 니치게이(日芸)라고 불리는 본교는 다양한 장르의 아티스트를 꿈꾸는 학생들이 전국에서 모이는 도쿄의 얼마 없는 예술대학 중 하나이다. 도쿄의 북서쪽 네리마구(練馬区)에 자리잡은 아담한 캠퍼스 내에 사진, 영화, 미술, 음악, 문학, 연극, 방송, 디자인 8개 학과의 학생들이 꿈을 향해 도전하고 있다. 돌아오는 2021년에는 창설 100주년 기념으로, 현재의 캠퍼스가 지어진 지는 얼마 되지 않은 일이다. (이전까지는 所沢(토코로자와) 교사에서 주 수업이 이뤄졌다)
나는 입학식 당일까지 학교로부터 받은 입학식 초대장 하나 외에 아무런 연락을 받은 적이 없었으므로, 회장에 도착해 내 이름을 확인할 때까지 수없이 자신을 의심해야만 했다. 입학식 초대장을 우편으로 받는 것이 한국인으로서 무척 낯선 경험이었다. 한국에서는 많은 시스템과 서류들이 디지털화 되어있는 반면, 일본은 아직까지도 대부분의 업무를 수기로 작성하거나 (이력서의 경우도 그렇다) 대학의 수강신청을 위한 포털 아이디를 만드는 것조차 쉽지 않다. 일본의 아날로그에 대한 고집에 대한 에피소드는 블로그에서 찬찬히 다루도록 하겠다.
무도관(武道館)에 가다

日芸의 전체 학부 입학식은 도쿄 치요다구에 위치한 일본 무도관(日本武道館、닛뽄부도-칸)에서 실시되었다. 대형 실내 경기장으로, 일본 문화나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유명 가수의 콘서트 장으로 쓰이거나 방송국 닛테레에서 주관하며 매년 8월 말에 24시간 생방송을 방영하는 프로그램 ’24시간 테레비’의 대회장으로 쓰인다는 사실을 금방 눈치챌 것이다. 약 8,000명의 인원을 수용하는 무도관은 비틀즈, 오아시스, 에릭 클립튼 등 해외 유명 스타들의 공연장소로 쓰였으며, 우리나라에서는 동방신기 등이 단독 콘서트를 펼친 바 있다.

입학식 초대장에는 따로 복장에 대한 규제 등은 명시되어 있지 않았으나, 일본에서는 암묵적인 ‘입학식 복장’이 정해져 있는 것으로 보였다. 남녀 관계없이 기본은 정장이다. 기온에 따라 트렌치 코트를 걸치는 여학생들이 있고, 낮은 펌프스를 신고 검은 가방 든다. 아직 옷매무새가 몸에 딱 들러붙지 않아 자세가 엉거주춤한 정장의 무리들이 하나의 길로 통하고 있었다. 일본에서는 대학에 입학하면 부모가 아이에게 첫 정장을 선물로 준다. 그리고 대학을 졸업한 4년 뒤, 첫 정장 입고 취업활동을 시작한다. 일본에서의 대학은 부모나 가족로부터의 독립의 시작인 것이다.
첫 발 딛기

입학식 식순은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총장과 이사장의 축사와 생소한 이름의 후원자들, 학생회장의 스피치, 입학생들의 사기를 북돋는 짤막한 학교 홍보영상 등의 순서로 진행된다. 다만 日芸는 스포츠학부로 유명한 사립학교이기도 해서, 전년도 국가대표 선수로 활약한 학생이 등장하여 수상을 하는 이벤트가 있었다. 단 한줄의 오차도 없이 질서정연히 빼곡하게 앉은 검은 머리, 검은 정장의 수천 명의 학생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체계, 조직, 관습 등의 키워드가 떠올랐다.
그리고 입학식은 거기에서 끝이 아니었다… 나에게는 또 한 번의 입학식이 남아있었다.